
# 당신이 준 사랑의 꽃잎으로 문장을 대신할게요.
모든 나날이 조금은 새록의 말주머니를 적어내는 날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어요.
나의 사랑은 어땠는가, 하면. 글쎄- 사실, 당장은 부상하진 않아요.
눈가에 주름을 조금 더 얹고, 곤곤히 생각해봤어요. 켠켠히 쌓인 마음들과 당신의 온기, 당신의 미소, 그리고… 그러게요, 횡설수설하죠?
미안해요. 쉽사리 정의되기엔 어려운 것 같아요.
갈라진 손톱 끝을 잠시 머뭇거린 뒤, 계속 적어왔던 낡은 수첩의 끈을 풀어요. 내 어리숙한 말놀림보단 어떻게든 적었던 문장을 보면 조금 더 잘 내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마음 한켠 속에서 당신이 떠오를 때마다 묵묵히 낱장의 잎새로 이 문장의 마무리를 대신했던 나날을 짚어보았죠.
당신의 숨결은- 나의 작은 아픔들을 데펴 이내 열병에 푹 담기어 내가 온전히 아플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그 사이에서 눈물짓던 나를 또 다시 침묵의 늪으로 보듬으며 감추어주었고,
그 안에서 나는 당신이 내뿜어주던 찬란한 사랑의 꽃잎을 주워가며 미완성의 편지 끝에 온점 대신 그 향을 같이 담아두었죠.
언젠가 당신이 나의 쉼터를 거쳐간다면, 내가 느꼈던 환산의 사랑을 슬쩍 자랑하기 위해.
어느 날은, 늦은 밤의 벚꽃이 틀어올린 옷깃 매무새에 한켠 자리를 잡을 때, 당신은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한껏 품으며 다가와 재잘재잘- 웃음지었죠.
나는 그 사이에서 누워 선잠을 잠깐 청했었죠. 그 꿈결 사이에 새초롬한 물기가 나의 마음에 다시 한번 적혔어요.
또 어떤 날은- 시원하리만큼 청량한 하늘 사이 구름이 꼭 당신의 사랑을 대칭하는 것 같아 그 녹음을 같이 담아내려 한껏 애를 써봤었죠. 퍽이나 애정스러워요.
그리고 당신이 잠시 춤을 추며 떨어지는 잎새 사이로 눈을 비추었던 그 때마저도…
줄곧 눈물짓던 차가운 습기만이 맴돌 때 마저도 당신의 눈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의 미연을 보듬어주었기에, 계속 적고, 그리고, 담고…
그렇게 적힌 미숙한 단어들을 보자니,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보았고, 그 안에 비춰진 나는 조금은 애정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 속에 빠져보았어요. 픽- 작은 실소를 터뜨렸죠. 수없이 많은 꿈을 꾸었던 파아란 밤이 한 켠의 줄 위에 사각히 긁혀있는 것들을 찬찬히 세다 보니, 수첩을 감싸던 끈은 힘겹게 틱- 끊어졌어요.
이제 이 낡은 수첩은 도저히 주머니 속에는 들어가지 않겠는걸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보니 수첩 속에 미처 담기지 못한 당신의 사랑이 바스러져 남아있어요.
손 가득 한움큼 짚이던 그 사랑을 손바닥에 살짝 올려두고, 후- 살랑이며 이 밤 사이에 웅성대던 별자리 사이에 남겨주어요.
남아있던 사랑의 단편선은 이제서야 저 녹음의 은하수가 되어 다시금 반짝이네요.
고개를 한껏 젖혀 그 글귀들을 손 끝으로 찬찬히 되짚자니, 그래요. 나는 적어도 당신 덕에 색채의 웃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집에 가는 길, 다시 길가의 마음들을 주워 수첩을 엮습니다.
다시 수많은 꿈을 밑줄 안에 가둬낼 수 있도록…
# 영원히도 새로운 당신의 모습에-
긴 한숨을 내쉬고 돌아온 저 하늘의 공기는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아릿하도록 파아란 우리의 구름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목을 내리앉히죠. 그래도 숨을 잠시 고른 뒤, 흡- 하며 당신의 물살로 뛰어들어요. 닿지 않는 그 아득함에도 애써 손을 내딛던… 당신이 없었던 지금까지의 시간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외로움을 쌓아왔는지- 이 상자 안에 휘몰아치던 마음을 한가득 켠켠히 쌓아왔어요. 이제야 당신이 왔으니, 당신의 그 아름다움에 기대어 내 상처를 태우고자 해요. 이내 당신은 연보랏빛과 파란- 그리고 노랗고도 새빨갛던, 연거푸 모습을 변하면서 나의 눈을 긁어내죠. 불현듯 찾아왔던.. 지독히도 떠오르던 단어들을 살며시 잠재우는 온건한 물결의 일렁임, 그 물살의 사이사이에서 터져나오던 조용한 보살핌은 누누이 터질것 같던 댐의 끝자락을 다시금 꾸욱… 눌러주는 강한 장력을 만들어요. 자국이 남지 않는 당신의 걸음을 따라 반사되어 나의 눈을 때리던 빛나는 그 너그러움은- 지루하게도 행복을 말하며, 희미했던 나의 마음에 다시금 위선의 치환론을 타인에게 내뿜을 수 있도록 붙잡아 주더군요. 내 의미대로 치환되지 않는 일련의 표현방식을 나무라지 않듯이- 그저 당신은, 이 곳에서 항상 존재했듯이… 그렇게도 올곧이 남아있었고, 또 새로운 표현으로 나의 눈을 현혹시키지만, 그 속에서도 불변의 의미를, 언제든 똑같이 건네주더군요. 나는 또 다시 그 속에서 오롯이 남아있던 영원한 행복을 끄적이고… 이토록 모순적인 나의 마음은, 이기심과 미움으로 자리잡아 내 스스로를 긁어먹는 손톱이 되죠. 그렇기에 울퉁불퉁해진 손 끝자락을 감추기 위해, 나를 흔들리게 하던 당신에게 깊숙히 덮쳐들어 얼룩을 남겨요. 그래야만 나는 이대로, 다시 위선의 방법으로 다른 이들을 축복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언제나 당신이 찾아올 때마다 그저 당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쁜 숨을 내뱉으며 달릴 수 밖에 없더군요.
요동스러운 파도를 끝자락의 단어로 진정시키는…
그런 당신 뒤에 나를 감춰담아 잠에 들게요.
포근한 새벽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 날마저-
며칠 동안이나 비가 내리는지 모르겠어요. 익숙하지 않은 이 날의 습기들은 줄곧 꾸준히 밤까지 이어져 와요. 이 습도 사이에 쉬이 잠이 들지 못하는 이 도시의 건널목 사이에서, 다행히도 우리는 같은 하늘을 아래에 두고 있어요. 먼 눈으로 봐도 닿지 않을 것 같았던 높은 하늘은, 습기에 가로막혀 낮은 천장이 되었고- 우린 그 아래에 기대어도, 이 긴 밤에서 잠들진 않을 거에요. 구름 사이에 생긴 파편의 그늘에서, 당신은 옹골차게 맺힌 땀을 지워요. 그리고 눈 앞으로 다가온, 손만 닿으면 바로 잡을 수 있을 듯한 저 늦무리의 달을 향해 팔을 내딛어요. 저 가까운 곳으로 나서다 보면, 제일 화려히 빛날 수 있는 새벽별의 은하수가 감싸와요. 습한 공기 덕분에 더 세차게 산란하는 감정을 오롯히 감싸안고, 어쩌면 영엉 오지 않을 내일을 미뤄둔 채 길어진 밤이 우리의 것이 되어요. 나는 당신에게 느지막히 달려가 가끔씩 짧게 떨어지는 비를 맞아주고 싶어요. 날카로운 방울이 눈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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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기적이게도 습도 높은 이 긴 밤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에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잊기 힘든 기록일 테니까요. 잠이 들지 않는 이 어두움, 그리고 길어지는 새벽이기에- 웅성대던 많은 것들은 낮게 가라앉아 잠들었어요. 도시의 조용함 사이에서 우리의 눈빛은, 저 조그만 창문의 불빛보다 더욱 반짝이고 있어요. 계속 밝게 빛나고 있어요. 우린, 우리는- 누구보다 더 청량하게 미소지으며 멈춰있던 이 밤에 충분히 빠져들어요.
낯설었던 이 밤이기에, 그 안에서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어서, 더욱이 당신이 새로웠어요.
늦은 밤이 휘몰아 지나가고 모든것이 깨어나는 때에 서서히 눈을 감는 이 때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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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도 싫었던 이 순간마저 사랑하게 되었어요.
#오롯이불행할수있었다
길고 긴 우울의 숲-동굴 속에 박혀 있던 드센 가시들은 도무지 가라앉을 줄은 몰랐더랬다. 작디작은 틀마저도 몸을 비틀며 맞추고 웃으며 썩어가던 그때의 모습은 내가 원했던 어줍잖은 미래, 곧 동경의 대상이었다. 당신 또한 획일화된 내 길목에서 등장한 하나의 돌부리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저 묵묵히 바라봤을 뿐, 그저 깊은 눈으로 줄곧 나를 지켜봤을 뿐.
나는 그 눈빛에 대수롭지 않게 얽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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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때 적힌 당신이란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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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어린 반딧불이의 모습마저 동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꿈결 속에서 부던히 숨이 막혀 목메여도 행복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고
새푸른 시간들이 스쳐가던 이 새벽의 스스럼없는 변화들을 알려주었다.
아마도 가장 불행했던 시간이었다.
알지 못했던 것을 느낀다는 것이-얼마나 슬픈 일인지 알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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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만 그때 당신을 만나 잠시 발목이 꺾여 주저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그 때, 다만그때 당신을만나-불행할수있었다는것을-지그시기뻐할뿐이다
#다른 단어로 당신을 적고 싶었어요
줄곧 해가 찡한 맑은 날만 뒤쫓았던 나인데, 오늘따라 흐린 날의 희미한 살결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신기한 날이에요. 누구도 만나러 가는 길도, 어떤 것도 하지 않는 날인데, 이토록 꽉찬 느낌을 주는 날이라는게 말이에요. 흐름 속에서 충분히 표류하다 문득 생각의 우물 속에서 떠오른 당신을 다른 말로 적어보고 싶었어요. 내 낡은 수첩 안에 단어집에 빼곡히 적혀있는 흔하디 흔한 그런 표현보다는, 당신의 마음을 찬찬히 쓰다듬고, 올곧히 살아서 내 눈가에 잠시 머물러가는 당신의 여러 모습을 낯설게 적어내고 싶어요. 나에게 떠오르며 보여진 당신의 깊은 눈빛은-두꺼운 안경 너머에서 찰랑이며 깜빡이고, 그 깜빡임에는 잔방울이 파르르 떨려, 이내 그 방울들은 내 몸을 톡톡 두들겨요. 그리고 부끄러이 웃으며 잡힌 그 살주름 사이의 기쁨은, 어떤 한마디로도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거에요.
그런 당신의 눈빛은- 도로 위 무심히 깨진 저 블록들마저 따스히 쓰다듬는 오뉴월 정오의 햇빛과도 같아요. 지독히도 차가웠던 그 늦은 밤의 달빛 아래에서도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감싸주는 온정을 뿜어내고 있어요. 새벽의 해가 밝아올 때에도- 어떤 색상 팔레트로도 집어낼 수 없는 그 풍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두 손을 꼭 잡아주는 눈빛이에요. 지그시 바라보는 그 손가에 내 아웅다짐은 작은 지저귐이 되버려요. 당신은 나의 바다가 되어요. 새푸른 빛을 가득 담은 저-끝이 없는 청량스런 바다. 나에게 당신은 그런 문장이에요. 짙었던 구름이 시원하게 뚫려 그 사이로 이어진, 당신이라는 바다와 하늘을 보다보면 아득한 시원함에 정신을 잠시 맡겨놀 뿐이에요. 이제, 눈을 잠시 감으면, 어디선가 밀려온 숨결의 잔상이 무거운 내 눈물을 휩쓸어가요.
당신은 나에게- 녹음이 짙게 펼쳐진 잎새 너머의 끝자락 속에 찾았던 새봄이었고, 수백번의 뜨거운 햇살 사이에서 나를 데펴오던 어느 중순의 한여름이었고, 잔잔히 빛나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가진 선선한 초가을,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하얗도록 뒤덮는 새로운 날의 늦겨울이었어요. 그 사이에서도 당신은- 매일 달라지던 온도를 가진 채 새벽녘을 어스름히 건너왔었고, 눈이 시리도록 찡한 한낮을 지나, 모든 것들이 침묵의 공간으로 가라앉던 늦밤을 계속 담아왔어요. 당신은 항상, 꾸준히 똑같던 새로움을 담아오는 사람이에요. 나의 소박한 우주에도 가아-득이 눌러담아 웃음질수 있게 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역시나 이 모든 당신의 모습을 한 마디로 적어내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에요. 나의 애매한 표현력으로는 항상 낯선 당신의 세계를 그려내기엔 너무 부족하죠. 그래도 당신을 계속 읽고 싶어요. 매일 보여주던 눈빛의 마음을 두서없는 글귀로라도 담아내고 싶어요.
그래요. 난 그저 매일 말하던 말이 아닌,
다른 문장으로 당신이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적어보고 싶었어요.
미숙한 나의 마음으로 말이에요.
#사라지기에 행복한 날입니다
늑장을 부리던 해가 완연히 떠오르기 전, 눈꺼풀이 이른 시간을 열었습니다. 창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대기의 입자들이 볼 한켠에 닿습니다. 팡- 터지는 방울은 얼굴의 전체를 빙그르이 감싸옵니다. 그 탓인지 마음은 아직 동하지 않았는데 삐걱이는 몸부터 먼저 깨워버립니다. 이내 무언가 홀린 듯이 옷가지를 대강 갖춰입고 끼익-거리는 낡은 문을 열고 도로의 골목으로 나서봅니다.
살가운 입김이 피어오르는 차가운 새벽의 공기, 제각각의 높이로 이루어진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보이지 않는 작은 새의 희미한 지저귐- 모든 것들이 신비로운 순간인 듯, 얕게 깔린 매연마저도 문득 따스한 마음입니다. 부끄럽게도 사실 아픈 마음을 품고 전날의 하루를 멈췄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보잘것없도록, 새로이 시작하는 새벽녘의 마음은 낮게 깔린 잔잔스러운 습도가 스쳐갑니다. 습기는 발목을 간지럽히며, 무거웠던 마음의 발자국을 긁어냅니다. 조금은 걸음이 가벼워진 듯 합니다. 아마도 이 느낌은 줄곧 부지런해야만 얻을 수 있는 이 때만의 선물일 것입니다.맑은 아침을 분주하게 준비하는 초록색의 옷깃을 가진 사람들의 슥-슥 쓰는 소리가 밤새 떠돌던 몽상들을 슥-쓸려보냅니다.
평소보다 이르게 날을 시작한 김에, 조금 더 표류해보기로 합니다. 뒷짐을 거하게 진 채, 거리의 탐사를 속속들이 시작합니다. 여러 골목들의 지면은, 지난 날에 가득히 쌓여있던 짓궃스런 흔적이 완연히 사라진 채, 백지로 뒤덮여 수많은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늦은 밤의 미련은 주택의 철창 사이에 비집어져 수줍게 펴있는 장미의 꽃잎 위에 이슬로 남아있습니다. 이윽고 그 미련마저 강인한 햇살에 휘발되어 사라질 터, 살짝은 무색할 따름입니다. 느지막이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봅니다. 얄궃게 부서진 도로의 아스팔트- 그 사이에서도 많은 것들은 엉성히 힘을 내봅니다. 짙은 녹음의 생명은 하루만 살지 않습니다. 여러 나날을 겪기 위해 뿌리를 깊숙이 심어냅니다. 이런 것들은 제각각의 마음이지만, 그런 것마저도 이 시간이기에 새롭게 느껴집니다. 골목의 틈 사이를 더 깊숙이 휘둘러봅니다. 그러다 보니 귀엽게도 목에 새빨간 리본을 한 고양이와 맞추쳤습니다. 자세를 낮추고, 눈을 마주치며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봅니다. 안녕? 고양이는 얄밉게도 조로록, 뱃살을 흔들며 저 멀리 가버립니다. 아쉬운 마음을 품은 채 허리를 펼쳐보니 한낮을 표방하는 해가 점점 더 길거리를 달궈옵니다.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렇지만 이 여유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항상 바삐 뛰어온 나로서는 이런 강단있는 여유로움이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왔던 발자국을 더듬으며 애써 느리게 돌아갑니다. 길가를 메워오는 햇살은 새벽녘에 새겼던 발자국마저 덮어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그늘에 남아있는 이 새벽의 잔해를 주우며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사라지기에 행복한 날입니다. 설익은 내 마음을 새벽녘에 감출 수 있으니 말입니다.
#모든 것을 담아내는 너이기에
모든 것이 축복처럼 보이는 시기입니다. 몇 없는 저 구름 사이의 햇빛마저도 사이사이 숨어든 사람들의 호흡을 미지근히 달구어냅니다. 이윽고 내뱉어지는 호흡에서, 여럿의 추억들이 만들어집니다. 숨결은 이 시간을 기록합니다. 타임라인에 밑줄이 그어집니다. 나 또한 새로이 밑줄을 긋습니다. 다만 내 줄선은 일방적입니다. 어떤 목표가 없습니다. 길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난 미소를 내비칠 곳이 보이질 않습니다. 짙은 환상의 나날 사이에 머뭇거리며 숨어있는 부끄러운 미소입니다. 그러다 길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문득 이 추억이라는 단어에서 다시 의미를 찾아봅니다. 현재의 시간을 과거라는 회상의 존재로 만들어내는 이 단어의 의미에 충실해, 스리슬쩍 다시 돌아가는 여행을 떠나봅니다. 내 서랍 속에 굵게 그어진 밑줄들에는 희미하게도 깊은 교류의 미소가 있었습니다. 낡은 사진의 사각 안에서 비추어지는 그때의 웃음은 우습게도 현재의 시간과 뒤섞여 새로운 꿈결로 인도합니다. 마치 그 시간이 과거라는 고유의 단어성에 갇히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앞날을 나아가는 착각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추억에 눈을 마주치면, 그동안 애써 흐릿했던 조각들은 이내 무엇보다 눅진하게 내 눈가에 달라붙습니다. 저 멀리 그때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멀었던 귀는 또렷이 그 음파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윽고 난 다시 오롯이 그 세계 안에서 머물러버립니다. 선명하게 새겨진 풍경 속에 잠수합니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너무나도 일방적인 회상입니다. 난 나에게 행복했던 기억만을 되새길 뿐입니다. 내가 날카로이 칼질한 마음은 애써 외면하며 당장 앞에 보이는 선명한 행복선의 흑연가루만을 묻힐 뿐입니다. 나는 그렇게 과거라는 단어에서 나의 다채로움을 더듬습니다. 아마도 내가 가장 빛나던 시기였던, 그때의 사진에서 보이던,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빛의 행복감을 아릿하게 쓰다듬으면서요. 신기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때의 당신과 닮아갑니다. 그렇게 지금의 나는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런 부분에서는 과거의 내가 잊혀지지 않은 채, 아쉽게도 나약합니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차마 바꾸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그럴지, 그런 건지, 과연 그럴까요. 나는 맺어지지 않은 질문의 꼬리를 풀어놓은 채 이 곳에 앉아있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숨결이 내뿜던 그 온도를 식히지 못합니다. 그토록 깊이 뜨겁던 바람 위에는- 그저 나의 얕은 한탄만이 맴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담아내는 너이기에
너를 설명하기에는 어떤 관계성의 단어를 써야 할지 모른다.
너의 존재는, 확연히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시간대에, 어떤 마음에 보여지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우유부단하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정말이지 오묘한 느낌이다.
너의 의미는- 중간점의 단어로 설명이 되어야할까. 과연 무엇으로 말을 해야할까. 잘 모르겠다. 너는 매번 엇비슷한 때에 아득히 신호를 날린다. 나는 그 신호를 느끼며 너를 바라본다. 너는 빛을 내뿜는다. 그렇지만 저물어간다. 어둑하지도 않다.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과연 너를 어떤 문체로 표현해야 이 느낌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끝내 너를 말하지 못한다. 설명할 수가 없다. 너는 그저 애매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너를 사랑한다. 찰랑이는 물결의 소리를 점점 더 키워주는 너의 그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세계를 수채로운 색으로 물들이며 저무는 너의 품속을 사랑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의 빛길에서 방황한다. 너가 담은 많은 의미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너는 짧게만 머무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통해 꿈의 앞으로 간다. 그곳에서 어떤 답은 없다. 그렇기에 너는 빛나며 사라진다. 그리고 곧 많은 자들의 마음에 꿈으로 각인되어 환상의 저편으로 넘어간다. 세상에 던져진 수많은 글자들 중 단 하나도 너를 정확히 칭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널 사랑한다. 너는 미약한 나의 존재마저도 같이 얹어담아 꿈결의 숲으로 여행을 떠나게 해주니까. 나는 너를 바라보며 정처없는 몽상을 한다. 나의 그릇된 욕망을 챙기고, 너의 뒤에 숨어가면서, 알 수 없는 내일을 만난다. 나는 너를 거쳐 나의 세상에 여러 색을 덧댄다. 그 붓자국 또한 너처럼 오묘하고 탁한 관계성이다. 무규칙의 아름다움에서 나와 너는 존재한다. 무성의 대화는 이어진다. 사소한 감정들이 교류한다. 한정성의 일력에 우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다시 소멸한다. 우리는 반복된다. 매번 불규칙을 만들어낸다. 너는 매번 나에게 손짓을 건넨다. 나는 그런 너를 사랑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이리도 단정짓기 어려운 너이기에, 난 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이루리 – About Summer를 듣고
한낮의 타오르는 햇살, 아지랑이 사이에서 피어오를듯한 그 감정들을 기억해요.
왜인지 모르게, 짙은 에메랄드 빛을 머금은 강릉의 해변이 떠오르는, 그때의 감정을.
나의 여름은, 어땠을까요. 당신과 담소를 나누며 상상의 해변을 걸었다면. 그렇다면, 어땠을까요.
잠시 신고 왔던 신발을 벗어요. 그리고 잘게 흩어져 있는 모래구슬 사이로 걸음을 집어넣어요.
우리는 이 해변 위에서, 아무 것도 없었던 처음의 감정으로 걸어가요.
걷혀있던 모든 걸 던져내고, 서로의 눈에 비추어진 연청빛의 순결한 바다를 바라보며, 묵묵히 그 감정을 바라봐요.
이윽고 그 둑을 견디지 못해 흘러나오는 따스한 눈물을 느끼곤 해요.
흘려내는 눈가를 살며시 어루만지겠죠.
계속, 무성의 이야기는 이어져요.
타오르던 이 여름의 햇볕에서, 나는 당신의 눈을 바라보며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나는 당신이 내비치는 미소에서 만들어진 얕은 주름에서도 짙은 애상을 느꼈었지요.
해변의 모래에 우리들의 그림자를 뉘어놔요. 그렇게 만들어진 방석에 한켠 더 겹쳐 누워 멈추지 않는 깊은 밤을 바라봐요.
아마도 이 여름의 공기는- 그때 아름답게 빛나던 당신을 넘치도록 담아냈을 거에요. 그리고 나는 그 공기의 낱알들을 꼭 껴안고 놓치지 않았겠지요.
놓치기 싫었을 거에요. 한낯 작은 파편의 가시마저도 눈물로 상처를 덮으며 어떻게든 감싸낼테지요.
잠시라도 교차했을듯한,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그리고 이제는 되돌아올수 없는 이 때의 바닷물을 가득 삼켜냈을텐데.
짙은 이 상상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감정이에요. 난, 그저 차가운 모래알 위로 서늘한 눈물을 천천히 흘려낼뿐이에요.
타오르며 영원할 것 같던, 오지 않는 여름을 그리며, 여름에 대한 짧은 예찬을 끝낼게요.
#부디 열렬히 반짝여주길
4월의 끝자락, 조금 습한 기층이 선선히 깔려있을 때에 우리는 만났습니다. 반팔과 긴팔, 어떤 것을 입어야 할지 고민되는 날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긴팔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해가 천천히 기상하는 초여름의 입김은, 유달리 차가운 근심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여러분과 교차하던 그때의 시간부터, 먹먹하던 바람은 그새 사라지고, 햇살이 머리카락 사이로 깊숙이 들어오는 따사로운 날을 만들어냈죠.
여러분을 담기 위해, 얕은 먼지가 쌓인 카메라를 들쳐메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때의 당신들을 담아냅니다.
빛 사이로 반짝이던- 금속의 안경테, 활기로운 대화를 하며 내뿜는 그 때의 시간, 청록의 잎새와 회빛깔의 콘크리트 사이로 보여지던 당신의 잎새들. 이 모든 것은 내가 들고 나온 사각의 틀 안에 여러 개체의 영원성으로 소중히 담깁니다.
이 때의 시간은- 아마도 가히 청춘이라 여길만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웃음소리와, 그 소리 사이로 새어나오는 눈가의 행복함은 내가 당신들을 표현고자 한 사진이라는 매개체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넘쳐흐르고, 아득히도 찬미롭던 세계입니다. 나는 그런 여러분을 묵묵히 담습니다. 이 짧은 여행을 최대한으로 품어내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이 시간이- 22년의 4월이라는 하나의 온점으로 녹화되어, 각자의 길에서 여정을 보낼 때, 다시 돌아보는 향수로서 추억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그대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셔터를 눌러봅니다. 나는 프레임 밖에서 당신들이 나에게 주는 선물을 받아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 때의 행복감을 누리며 즐거워하는 그대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니, 나의 프레임에 당신들의 아름다움을 열렬히 뿜어주기를 바랍니다. 녹음이 우거지며, 색색의 꽃들 사이로 피어오르던 당신들의 모습에 나의 마음도 무례한 무임승차로 그 행복감에 같이 헤엄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는 저 멀리- 관찰자의 시선에서, 무채색의 캔버스를 여러분의 미소진 아름다움 밑에 깔아두겠습니다. 그저 그 위에서 더 맑은 빛으로 칠해지길 기도할 뿐입니다. 나의 청춘은, 그대들이 이 시간에서 교차해 부딪혀 만들어낸 기쁨의 조각들을 모아 빚어낸 거니까요. 우리가 그려낸 이 청춘의 일람이 시리게 빛나도록, 이 끝자락이 화려한 마무리의 시작이 되도록, 나는 그대들의 사각에서 기꺼이 사진기를 들겠습니다.
부디 이 여름의 초입에서 반짝여주길 바랍니다.
#내가 흐려질 수록 너는 더욱 밝게 빛나리
유달리도 어둠을 좋아한다. 보름달 뒤에 비추어지는 한강의 찰랑이는 물결, 모든 걸 흡수하는 듯한생기를 잃은 깊은 눈동자 색, 가로등 밑에서 빛을 받아내는 한 떨기 꽃잎,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마저. 전부 색이라곤 하나도 없을 따름이다. 이리도 깊은 암영 속에 빠뜨려 두었던 시기가 과연 언제부터였는지는 인지가 되질 않는다. 그러다 어느덧 나는 그 끈적한 늪에 편안히 잠겨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두 흰자위만큼은 검은 늪방울에 잠식되지 않고 끈덕지게 버티고 있었다. 나는 부릅 뜬 그 눈으로 여러 세상을 본다. 그 뒤 내가 담아내는 결과물들은 오색찬란의 빛을 머금은 찬란한 마음들이었다. 나의 결과를 본 친구는 말을 남긴다. 너의 외관은 무채색일지언정, 세계를 보는 두 눈은 아름답게 화려한 무지개빛이구나. 그 문장에 나는, 짙은 회의의 답문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어두워야만, 더 찬란한 빛을 볼 수 있다는 짧은 답장. 무의식적으로 답한 나의 말에서 느껴졌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내가 더욱이 어두워져야만 눈부시게 빛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때묻은 불결한 의도가 순수히 빚어내는 당신의 빛에 오점을 남기면 안되기에, 혹여나 이 끔찍하도록 섣부른 나의 애정이 튀지 않게 나를 지독히 지워버리는 것이다. 두 눈에서 떨어진 끈적한 물체들로 나 자신을 치욕스레 덮어내고, 숨을 힘껏 참아낸다. 이 행위는, 널리 펼쳐진 많은 세계에서 한 줌의 빛마저도 새어나가지 않게 휘둘러 감싸놓는 것이다. 흐린 눈으로 본다면, 평온한 상태로도 보여지는 이런 나의 모습은━ 칠흑 속에서 더 단단해지며, 이내 그대의 장작이 되어 그대가 뿜어내는 빛무리를 더 크게 밝히는 데에 열렬히 사용될 것이다. 나를 태워가며 빛나는 당신의 불씨에서, 당신의 사랑으로 이루어져 떨어지는 작은 재를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난 한없이 감사할테니. 부디 있는 힘껏 빛나주어라. 자유로이 반짝이는 당신을 보며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을테니까. 난 치켜뜬 눈을 절대 감지 않고 그대의 끝자락 한 망울마다 따라가 온전히 그대에게 빠져들겠다. 실핏줄이 터지며 그 사이에서 나오는 나의 오점은 그대에게 스쳐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거칠게 눌러가며 막아내겠다. 그렇다면 더 깊은, 어쩌면 순수해 보일지도 모르는 짙은 어둠이 만들어질테고, 그렇게 내가 흐려질 수록 그대는 더욱, 정말 더더욱이 환하게 선명해질 수 있으리라. 이것이 결핍으로 이루어진 나의 잘못된 사랑방식이다. 나는 그대의 영원성을 기도하며, 스스로를 위선의 헝겊으로 덮어낸다.
아, 당신의 빛은━ 다행히도 내 암체 속에서 더욱이도 밝게 타오른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렇지 않게 스쳐가는 존재이길 바랍니다
어서와요. 당신은 부탁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다시 왔어요. 언제나 이 자리에서, 기다렸을 뿐이에요.
매번 지겨울수도 있겠지만, 난 항상 이 시간에만 머물러요. 내가 없었던 시간에서 쌓아온 당신의 밤을 품어내기 위해서요.
수많은 나날을 거쳐온 순간의 기억들, 그리고 애써온 그 때의 조각들. 여럿의 이야기를 가져왔네요. 이제 쉬이 누워 잠깐 나를 바라봐줘요.
지금 나는, 당신에게 활기로운 양분을 주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어요. 난 이곳에서 다시 수많은 잎새들을 피워냈지요.
당신이 여기서나마 아득한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도록. 짙고 어둑스러운 새벽의 밤하늘을 가득 감싸 따사로운 오후의 나날로 착각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교차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 몇번 눈을 깜빡이면 난 언제 있었냐는 듯 저 편에서 사라질테니. 그리고 내가 있었다고 느낀 그 자리엔 버들잎만 살랑일 뿐이에요. 이처럼 짧은 시간에라도, 나를 찾아와준 당신을 위해 애를 써봐요.
서서히 데워진 공기 사이로, 자그맣게 미소를 띄어주는 당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정말 활짝 웃었으면 좋겠지만, 나의 시공간은 당신과는 몇걸음 떨어져있다는 것을 알기에, 흐린 미소만을 보는게 최선이에요. 그토록 다가갈 수 없어서, 더 아름드리 보이기 위해 애타게 뿌리를 뻗어봐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크디큰 행복감, 이것이 당신의 눈가에 비추어져 그 풍경에 기대 편안히 쉬어갈 수 있도록 애써 어두운 부분을 모른 척 해요. 매번 이 때에 만나지만, 당신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은 항상 어리숙해요. 어떤 말을 건넬지 모르죠. 아무 말도 하지 못해요. 나는 계속 반복되지만 당신은 항상 낯선 모습으로 만나기에,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하니까요. 그러니 그저 쉬어갈 수 있도록 할 뿐이에요. 나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 있는 동안은 나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랄 뿐이에요.
편안히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고 지금껏 쌓인 기억의 눈물을 떨구어줘요. 이곳에서나마 평안한 선잠을 자길 바랄게요.
당신이 꿈을 유영하는 곳의 벽이 깨지지 않게, 따스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해볼게요. 그리고 서서히 눈을 떴을땐, 옅은 청록색의 잎새들이 당신을 맞이하겠죠. 언제 있었냐는 듯. 짧은 꿈결을 보낸 그 자리에는 그늘만이 남아있을 뿐이에요. 편히 쉬어가요. 마음껏. 교차하는 우리의 나날은 너무나도 단편적이니까요. 그리고 일어나요. 눈가를 천천히 떠올려, 내가 스며들어 펼쳐진 새푸른 숲을 봐요.
이제, 아마도 또 이맘때쯤 봐요. 안녕히.
#깊은 잠을 자자. 열심히 길을 잃도록.
문득 스쳐 지나간 너의 눈망울을 봤어. 짧은 찰나, 그 흐름을 느낀 순간 쉴새없이 휘몰아쳐 나를 침몰시켰지.
그렇게 만들어진 미지의 경계에서, 아무렇게 놓여진 시선에 주저하며 올라타. 발끝에서 울려퍼진 그 음파는 이내 의미를 알 수 없는 서로의 대화가 되어 단상을 적시기 시작해. 모든 단어는 건네는 족족 여러 음표가 되어 우리만의 악상을 기록하고, 그 위에서 조금씩, 어쩔 줄 모르던 몸을 살짝이 옮겨내. 우리가 소곤대며 지어낸 잔잔히도 격정적인 음색에 맞춰, 손가락을 길게 뻗어내고, 발자국을 천천히 그려내네. 나는 말갛게 움직이는 너의 단어에 깊숙히 홀리게 돼. 계속 만들어지는 이 악보의 끝은 없어. 그저, 영원한 움직임을 바랄 뿐. 새벽이 지나고 바로 노을이 저며드는 이리도 황홀한 시공간은 오롯이 너의 몸짓에 맞춰 흔들려. 우린 열두달의 세계에 갇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춤을 춰. 우린 서로 다른 운율로 같은 시간을 피어내겠지. 너의 손가락 끝에 아름드리 떠오른 예쁜 열 개의 달을 보며 지어낸 짙은 미소를 달구름 위에 조심히 올려놀게. 너는 부끄러운 내 입꼬리에 화답하듯, 우리의 머리 위로 높게 펼쳐지던 무지개의 잎새에 조심스레 올라타 한껏 피어나네. 나는 그 춤사위의 발자국 끝자락에 피터지는 박수의 갈채를 심어줄게. 계속 손을 뻗어줘. 믿기지 않는 공허의 행복감이 멈추지 않도록. 한없이 무한의 음표를 만들어줘. 우리가 물들어내는 이 연주에는 온쉼표가 없길 바랄 뿐이야. 자, 끊임없이 어여쁜 물방울을 뿌려주렴. 그렇게 쌓인 물결에서 정처없이 유영하며 나의 물방울도 그 안에 자유롭게 녹여낼테니. 나는 네가 뿜는 살가운 숨결에 날카로이 베이며 지독히도 다채로운 웃음을 빚어내고 싶어. 새벽녘의 어스름한 공기가 푸르른 대지에 비춰지는 환희의 빛으로 둔갑해, 어둠과 같이 내어주는 이 오묘하고 끝없는 미로에서 나가기 싫을 뿐이야. 떠오르는 해와 짙푸른 하현달의 그림자가 서로의 색을 내뱉으며 섞인 경계 위로 도저히 셀 수 없는 음색이 덮여 머무르는 이 혼성의 공간에서, 네가 건네주는 목소리와 몸짓에 포근히 안겨 영영 매료되어 잠시 멈추고 싶어. 이 세계는 나의 더럽고 끈적이는 눈물이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는 순간 가차없이 부서지는 눈부시도록 순결한 유영체이니까. 이토록 청아한 곳에 누워있는 너의 따스한 품 속에 스며들어가 못된 꿈을 꾸고 싶을 뿐이야. 우리가 같이 만들어내는 이 쉼없이 이어진 지평선 위의 세계, 그 속에서 머뭇거리며 손을 포개어 흥얼거린 우리의 재잘거림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몽상을 누리곤 해. 우리는 끝없는 열두개를 품어낼거야. 내가 멋대로 만들어낸 물살에서 아프게도 황홀한 춤으로 사근하게 안아줘서, 고마워.
이제 깊은 잠을 자자. 꿈결같은 미로에서 열심히 길을 잃을 수 있도록.
잘 지냈어요? 어쩌다 이 안식처에 찾아온 당신에게 머뭇거린 인사를 건네요.
나는 아마도 낱장의 잎새를 심고 있어요. 내가 멋대로 이름붙인 이 정류장이란 곳에 작은 마음들이 푸르게 뻗어올라 짙푸른 녹음의 숲이 되어서, 당신이 깊은 미지의 우주를 유영하며 많은 것들을 담아내다 지쳐 굴러 떨어질때 조금이라도 포근히 받아낼 수 있게 말이에요. 살짝이 지친다면 내가 만든 이 일방통행의 정류장에 잠시 멈추어가요. 그 뒤에는 한가득 싣고 온 당신의 무게를 가차없이 건네주세요. 나는 당신이 던진 이 무게에 기쁜 미소로 화답할거에요. 그리고 그 수많은 매듭들을 천천히 풀면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읽어나갈거에요. 당신의 짐은 이내 짙고 무거운 바퀴가 되어 웅성이던 잔디들을 짓이기겠죠. 그렇게 짓밟힌 곳에 있던 옆의 잔디를 포근한 가림의 벽으로 삼아 우린 몸을 펼쳐 함께 누워, 저 하늘 위로 깊게 빛나며 어두워진 당신이 건너온 세계의 오로라를 보며 이윽고 못다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죠. 단색의 영체만 보아오며 흐릿해진 나의 눈가를 닦아내고 당신의 빛나던 문장을 바라보아요. 당신이 펼쳐준 이 찬미로운 세계에 내가 무례한 걸음으로 들어가, 표류하며 만들어낸 저 시리도록 찬란한 색들을 바라보면서, 기뻤던 단어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짙은 눈물을 흘릴거에요. 우리는 시간의 계절이 바뀌어가며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이토록 여럿의 물결에 대해 참방이는 작은 파동을 느끼며 순수하게 웃음지겠죠. 흩날리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둔 채, 이곳에서 편안히 짧디긴 휴식을 누려줘요. 그러다 이제 초록불의 신호가 점점 크게 보여지며 당신에게 이 곳을 떠날 때를 알릴 때, 때묻은 내 더러운 단상은 털어내고 당신의 그림자는 이곳에 거침없이 두고 가줘요. 내가 가꾼 이 작은 숲이, 요동치는 그 암체를 어떻게든 덮어낼테니까요.
그리고 나는, 떠나는 당신에게 지극히도 거짓이 담긴 위로를 연극해요. 여기서 같이 속삭였던 기쁨의 감정이 더욱 증폭되도록. 연극이 들어간 이 마음을 순진하게 오해해줘요. 당신이 더 찬란하게 행복함을 그려낼 수 있도록, 나의 감정은 잔잔히 감춰둘게요. 그러니 내가 키운 이곳을 마음껏 이용해줘요. 그렇게 해서, 지친 연료가 소진되고 다시 나아갈 힘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쉬이 받아들일테니. 그리고 당신은 더 넓은 세계를 담고 와줘요. 그런 뒤 언젠가 나의 정류장에 와서 다시 무거움을 건네줘요. 그게 당신에게 기대하는 나의 작은 욕심입니다. 이것만은 유일하게 진실된 모습이에요. 그렇게 해준다고 약속한다면, 나는 당신이 건네준 찬란한 빛에 아득히 멀어버린 눈을 어떻게든 닦아가며 짓밟혀진 이 잔디들 위에 다시 짙푸른 잎새들을 심어낼게요. 거대하고 끝없는 이 드넓은 선로에서 내가 가꾼 이곳이 멀리서도 푸르게 또렷히 보일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나의 정류장이 보일 때면, 휘몰아치는 무게를 건네줘요. 그러면 언제든 당신에게 짙은 가식이 묻은 위로를 건넬 테니까요.
아름다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무채색이 그토록 즐비했던 나의 마음 속에는 몇년간 계속 풋풋한 잿더미만이 남아있었던것 같아요.
색을 잃은 그 더미들은 찬찬히 쌓여두어 머뭇거리는 벽을 만들어냈죠. 그렇게 계속, 모아왔어요.
그리고 그것이 나의 찬란한 색이라고 담아내며 있었어요. 그런 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건, 작은 떨림인 것 같아요. 수많은 시선에 아파했던 모습을 보았지만, 그러면서도 결이 같은 이야기를 할때는 누구보다 눈망울이 아름드리 새벽별처럼 반짝였던 그때의 모습이 선히 담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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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떨림이 시작되었던 거죠. 그 떨림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던 먼지들마저 거세게 뒤척이며 마음의 물살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이윽고 난 눈이 멀었어요. 그토록 시리게 다채로운 팔레트는 나에게 담아내기에 너무 과분한 대가였나봐요.
나는 머뭇거렸어요. 언제나 그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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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했어요. 나의 입으로 나오는 수많은 단어가 혹여나 다른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러면서도, 제멋대로 건방진 상상을 했어요.
나의 시간으로 새로이 담아내는 모습을, 같은 물살로 요동치는 많은 마음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깊은 시간을 유영하고, 더 넓은 세계를 찾아가는.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미지의 선로를 달려 알 수 없는 설레던 여행을 하리라는.
그토록 이 상상은 거대했나봐요. 도무지 끝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꿈은 나만의 오해였어요. 정말로 하면 안됐었죠. 그렇기에, 여러 암석의 파편들이 더이상 색을 담지 못하게 막아냈어요. 이제 더는 내 감정을 담아내지 말라면서.
나는 이제 다시 찬미로운 삶의 시작을 멈추었어요. 결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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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문을 다시 굳게 닫고, 떠오르는 햇살을 빌려 글씨 하나하나에 내 작았던 숲을 담아보내요.
비록, 길을 잃었지만, 언젠가 표류하는 단어들은 모이고 모여 그때만의 풍요로이 포근했던 숲을 바라내겠죠.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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